실버 그레이

무채색(achromatic color)이라 할 수 있는 회색(灰色)은 잿빛을 의미하며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색을 말한다. 은색과 회색 모두 색상을 구성하는 빛의 스펙트럼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색상이라기 보다는 밝고 어두움을 뜻하는 음영에 가깝기 때문이다.

자연의 색상 안에서 회색을 연상하다 보면 잿빛, 구름 낀 하늘, 겨울 등을 떠올리게 되고, 종종 무기력, 우울한 감정과 같은 심리적인 연관성을 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물이 타고 남은 재의 색상인 회색은 애도, 회개 등과 같은 종교적 연관성도 가지고 있다. 회색이 생명의 둔화현상, 정지된 상태, 죽음이 임박한 순간을 의미하는 탓에, 피카소는 인생의 말미에 본인의 자화상과 전쟁에 대한 이미지를 회색 컬러톤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반면, 같은 무채색 계열이나 금속의 광택이 더해진 은색(銀色)은 상반된 의미로 화려함과 신비로움을 의미한다. 귀금속이나 화폐의 색상과 유사하기에 자연스레 ‘가치(value)의 색상’으로 인식되었고, 여러 광물과 금속(알루미늄, 크롬, 니켈, 티타늄 등)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신비의 색상’으로 인지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회색을 특징이 없는 우울한 감정의 색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포용의 색상’이기도 하다. 이는 뉴트럴 컬러(neutral: 중립적인)톤으로 분류되는 회색이 블랙, 블루, 그린, 레드 등 다른 컬러를 돋보이게 해주는 효과와 일맥상통한다. 유사한 관점에서, 은색 역시 화려하나 절제의 속성을 가진 색으로 인식되었고, 17세기 인물화와 정물화에서는 인물의 피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은색 계열의 장신구들을 많이 활용하였다.

19세기 영국의 런던이 유럽 남성들의 패션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런던 신사들의 비즈니스 정장은 중후함과 더불어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나타내는 아이템으로 인식되었다. 겨울에는 어두운 계열의 회색과 검은색 정장이 유행했고, 여름에는 밝은 계열의 회색이 들어간 정장을 많은 유럽 남성들이 선호하였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회색이 ‘비즈니스의 컬러’라 불리며, 스타일과 크게 상관없이 꾸준히 정장을 대표하는 색상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컬러 트렌드 속에서, 회색은 많은 경험과 지혜의 존엄성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바로 오랜 역사와 미국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가 그레이 레이디(Gray Lady)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은색은 달빛과 별빛을 상징하는 색으로 적막과 침착함을 의미한다. 더불어 화려함, 우아함, 지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기에, 기계 및 첨단산업을 상징하는 모던 컬러를 대표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상징성 때문에 자동차 브랜드 로고와 슬로건의 색상으로 은색 색상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도시의 시크한 감성, 자동차의 속도감, 첨단 기술과 제품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은색이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요기보는 25가지 컬러 중 5가지 색상을 뉴트럴(Neutral) 색상으로 구분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 5가지 요기보 뉴트럴 색상들을 모아 신규 컬러 팔레트 컨셉을 통칭하는 의미로 ‘뉴트럴(Neutral)’ 커버를 출시하였다. 이는 뉴트럴의 반복적인 패턴으로 사용하면 일반적인 단색과의 컬러 차별성을 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뉴트럴 컬러가 품기는 “포용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교양 있는 분위기 연출 속에서 다른 컬러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효과를 원한다면, 이 달의 컬러로 뉴트럴 컬러를 추천한다.